독후활동

감상 2014. 8. 20. 19:41

대충 보름쯤 전에 귀국하자마자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빌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으로 기대가 컸고 또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이것과 최근에 읽기 시작한 김홍중 씨의 『마음의 사회학』을 통해 ‘아, 내가 진짜 평소에 독서가 아주 부족했구나’라 느낀다. 부끄럽다(는 또 9월부터 정신없는 일상의 시작이니...).

헉슬리는 ‘야만국’과 ‘비야만국’, 두 세계를 설정하고 책 중후반에는 두 세계의 충돌을 그린다. 이것저것 생각해봤으나, 두 세계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헉슬리가 설정해 놓은 비야만국에서는 ‘질문’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두 세계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헉슬리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려 했다. 이것이 왜 나에게까지 디스토피아여야 하는가 까지는 조금 더 생각해봤는데 사실 요런 질문 전체가 내가 독일에서 하던 생각과 거의 같았다. 인간성이 말살된 디스토피아.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이것 역시 작품 안에서 비야만국과 대조되면서 잘 드러나 있다. 인간성을 다시 개인 차원으로 생각해보니, 내가 독일에서 하던 생각이 온통 인간성에 대한 생각이라 정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것은 내게 충격처럼 전해지면서 마치 어떤 세계를 접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 세계에는 이미 알만한 거장들이 많이 있었다. 다시 이러한 인식 아래에서 조금 더 생각해보고 나서야 왜 헉슬리가 비야만국을 디스토피아로 그린 것인지 공감할 수 있었다. 내 평소의, 독일에서의 생각과 잘 들어맞았다(사실, 인문에서 인간성을 논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헉슬리의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에 있다고 본다. 헉슬리는 비야만국에 더 초점을 두었다. 비야만국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어쩌면 가장 고전인 셰익스피어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독서가 부족했던 나는 그 전에 인간성, 인문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함은 당연한 과정이다).

『마음의 사회학』을 읽기 시작한 요즘에는 지식인들의 생각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음을 느낀다. 같은 본능을 가진 비슷한 유형의 인간으로서 인간, 인간성, 인간화, 인간다움, 인문을 고민하기 때문일게다. 책이 생소한 나에게는 약간은 편협하고 오만한 그들만의 생각으로 보이기도 했다. 기존에 내가 했던, 오만하고 편협하고 유치한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생각과 아주 비슷한 것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반가웠고, 마치 나의 커뮤니티를 찾은 느낌이었다. 독일에서 허용된 여유 덕택에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은 훨씬 깊었다. 특히 김홍중 씨는 현재의 한국을 너무나도 잘 그려냈다. 김홍중 씨의 묘사는 추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져있지만, 가까이 있는 실생활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낼 만큼 아주 구체적인 지적이다. 계속하여 비슷한 맥락의 말이지만, 여러 인용들을 보아, 최근의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았다. 일단 적어도 나의 경험과 생각과는 같은 방향이다.

『마음의 사회학』을 읽을 때 ‘스놉(Snob)’이란 표현이 너무 직접적인 것이 아닌가 했다. 얼마 안 되어 ‘스놉’과 ‘고급스놉’으로 나누어 설명하긴 하지만 앞에 ‘고급’이 붙어봤자 직접적인 느낌은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대부분의 (한국, 또는 대량소비사회) 사람들은 고급스놉일 것이다. 단어의 직접적인 느낌은 마치 그들을 폄하하는 듯한, 그런 인상을 준다(‘고급’조차 붙지 않는 ‘스놉’은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거의 경멸한다. 소위 말하는 ‘교양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런 (약간의) 폄하가 나한텐 약간 불편하다(물론 김홍중 씨도 폄하의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읽다보면 ‘고급스놉’의 유래가 자연스럽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런 면에선 어쩌면 ‘스놉’이란 표현도 일부러 영어로 돌려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념을 새로 조명하기 위해 다른 용어를 선택했다고 써져있지만.). 그런데, 유감히도 김홍중 씨의 묘사에 나는 공감을 한다(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워낙 내 관찰과 잘 들어맞기에... 일단 책의 초반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육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는 데에 있다. 사유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며,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고,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 교육은, 분위기로만 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한국 교육이야 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다. 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실제로 노력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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